연다는 소식이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인터넷 카페에 오르자마자 수강 신청이 폭주했다. 주최 쪽은 좋은 질문을 올리는 신청자들을 뽑기로 했고, 게시판엔 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한 신청자는 “왜 하필 지구에 와서 수많은 그림쟁이들을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느냐”고 질투와 장난기를 섞은 질문을 올렸고, 수강자 선정이 끝난 직후 찾아온 한 일러스트레이터는 “이런 행사는 동영상으로 찍어 팔아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게임과 영화를 무대로 세계 상업 미술계 최고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환상의 세계를 구상하는 이른바 ‘콘셉트 아트’의 스타인 미국 작가 ‘굿브러시’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서울비주얼웍스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본명은 크레이그 멀린스이지만 필명 굿브러시로 널리 알려진 그는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세계적으로 히트를 기록한 게임 <헤일로>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텔레비전 드라마 <영 인디애나 존스> 등의 환상적인 배경과 캐릭터 등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다루면서도 회화 못잖은 서정성을 보여주며, 특히 빛의 처리가 탁월해 ‘빛의 연주자’ 또는 ‘포토샵의 그랜드 마스터’라 불리며 전세계 상업미술가들의 우상으로 꼽힌다. 19일 서울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열어 작업 노하우를 소개하고 돌아간 그를 <한겨레>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과거와 미래, 환상과 실제를 뒤섞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이 이미지의 연금술사는 상상의 세계는 공상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과학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 영화 <매트릭스 레볼루션>, 게임 <헤일로>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텔레비전 드라마 <영 인디애나 존스> 등의 환상적인 배경과 캐릭터 등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굿브러시의 작품.

­포드사에서 산업디자이너로 출발했다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진로를 바꾼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동차 하나 디자인하는데 수천장을 그려야 하고 5년은 지나야 제품이 나오는 것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저 같은 멍청이(그는 자신을 “너드”(nerd)라고 불렀다)는 꿀벌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습니다. 1992년 처음 포토샵을 접한 뒤 디지털 이미지를 다루는 데 5년 정도 시행 착오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실제 같은 현실감과 가상 이미지 특유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그림이 매력적입니다. 현실감과 상상력을 조화시키는 나름의 비결이 있습니까?

“저는 제 자신을 아마추어 과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늘 생각합니다. 도로 공사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땅을 파는지, 어떻게 포장을 하는지 그런 과정들을 눈여겨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방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시간이 지나 벽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새고, 동물들이 들어오고…, 그런 흐름을 상상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지구 중력이 10배로 강해지면 동물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산소가 아니라 다른 원소로 호흡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런 걸 생각해보죠. 가공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과학적 근거들을 적용시켜 만들어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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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나 캐릭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건가요?

“초보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하는 실수가 너무 세밀함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너무 자세하면 그림이 복잡해져서 사람들이 어디부터 봐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세밀 묘사는 단순화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캐리커처 방식을 씁니다. 사람 얼굴을 그릴 때 특징 한두 가지만 잡아내고 나머지는 단순하게 그리는 식이죠.”

­게임과 영화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어떤 장르가 더 맘에 드나요?

“게임입니다. 영화는 워낙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담도 크고 비즈니스 인맥 등 정치적으로 신경 써야 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매트릭스>만 해도 사실 제 창의성은 전혀 안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냥 일개미였을 뿐이죠. 그래서 영화가 싫습니다. 게임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얼마든지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상상력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합니까?

“배고픔이죠.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농부가 되는 겁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그렇게 할 겁니다. 이젠 지겨워요.”

­평소 게임이나 영화를 즐기는 편인가요?

“게임, 영화 둘 다 전혀 안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한 것을 보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기가 어려워집니다. 전 <스타워즈>도 안 봤습니다. 대신 논픽션책을 읽습니다. 공학이나 역사책, 지질학책을 주로 봅니다. 리얼리티는 픽션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064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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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 2010.06.1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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